장기리

소개

장군리(將軍里)의 양지나실과 마주보고 있으므로 음지나실이라 하며, 신라 경순왕 때에는 내동(乃東)이라 부르다가 한일 합병 뒤에 옛 효령 시장터라 하여 장기리(場基里)라 불리게 되었으며, 김유신장군이 장기1리~3리에 장군깃발을 꽂고 표시를 한 표적지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장기리로 정했다고도 합니다.

장기1리

  • 금산동, 갈미 등의 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
  • 금산동은 내동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1780년경 마을이 개척되었다고 하며 산림이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심이 좋고 토지가 비옥하다하여 금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많이 떠나 서 작은 마을로 변모함
  • 갈미마을은 금산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갈미봉 아래가 됨
  • 본래 군위현 효령면 지역으로 고종 32년(1985) 군위현이 군으로 승경하면서 군위군 효령면에 속하게 됨

오시는길

장기2리

  • 장기동(내동동, 음지나실)을 중심마을로 하여 사창천 가에 있는 마을
  • 장군리의 양지나실과 마주보고 있었으며 음지쪽에 있다하여 음지나실로 부르기도 함
  • 일설에 따르면 내동이라 부른 것은 신라 경순왕 때부터라 하기도하나 최초의 개척연대는 잘 알 수 없음
  • 본래 군위현 효령면 지역으로 고종 32년(1895년) 군위현이 군으로 승격하면서 군위군 효령면에 속하게 됨

오시는길

장기3리

  • 고암동(고지바아, 고지바우, 동고암)을 중심마을로 함
  • 고암동은 동고암과 서고암으로 나뉘는데 서고암(한실)은 고곡리에 속하고 동고암이 장기3리에 속함
  • 장기2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고지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하여 고암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음
  • 1914년까지는 면사무소와 시장이 있어서 효령면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면사무소가 중구리로, 시장이 장군3리로 이전하였음

오시는길